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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eve

곽을 성으로 쓰는 곽이브는 이름에 있는 유일한 한문의 덕분인지 테와 틀을 가진 온갖 종류의 박스와 담는 것, 건축물에 마음이 끌렸다. 그림이 담기는 종이를 활용하는 설치와 단편적 입체를 만드는 실험을 통해 테와 틀이 만드는 공간과 공간을 만드는 테와 틀을 재 조형했다.


크록스의 시간

물과 육지 생활을 모두 하는 것은 악어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과 육지에서 살갗이 연약한 사람은 신체를 보호할 도구가 필요했다. 마른 날의 신발도 필요했고, 비오는 날의 신발도 필요했다. 여름에 비오는 날 신을 신발과 겨울에 비오는 날 신어야 하는 신발은 또 달랐다. 과거 한국에는 조선시대 버선과 가죽신발을 본따 만든 고무신이 있었다. 50년전 그 수요는 폭발적이었고, 특히 시골의 농부들에게 방수가 되면서 쉽게 더러움을 씻어낼 수 있는 고무신의 성질은 크게 환영 받았다. 생각해보면 운동화나 장화가 없고 귀하던 시절 짚으로 만든 신발에 대한 대안이 되었을 뿐이지만, 작업화의 용도 외에 꽃신처럼 외출 시 신을 수 있는 전천후 아이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흙길과 숲길의 폭신함에 적절했던 고무신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단단한 땅과 도시의 속도 위에선 위협적인 신발이었다.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신발은 고스란히 발과 발목, 무릎과 허리를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신발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외국 제품의 수입이 활발해져 국내에서 고무신이 이제 더이상 국민 신발이 아니게 된 2002년 미국에서 새로운 고무신이 만들어졌다. 서핑을 하며 신을 수 있는 물이 잘 빠지는 신발을 떠올리던, 바다 서핑을 즐기는 3인의 청년의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가 그 시작이었다. 발에 쫙 감기는 맛이 특징인 고무신과 반대로 발에 여유공간을 두고 신겨지는 신발은 발을 개구리의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고, 의복의 톤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특이한 것이 특별한 것이 되는 필드와 그 과장됨을 미학으로 삼는 패션 트랜드의 영향으로 인기를 끌며 일상 신발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서핑 붐이 일기 전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발로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물이 없는 상황에서 그 착화가 더 빈번히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크록스의 등장과 무관하게 인류의 신발은 계속 진화했다. 공기가 들어가거나 새로운 폼이 덧대해져 구름 위를 걷는 착화감을 선사하는 운동화, 전쟁 때 환자들이 신었다는 딱딱한 샌들, 발 형태에 따라 늘어나는 니팅과 젤리슈즈, 양말과 하나된 신발이나 바지와 하나된 신발에 이르기까지, 멋있으면서 사람의 발을 편하게 하기 위한 혁신은 계속 되었다.하지만 한 두번 유행과 필요에 휩쓸려 구입했다가 떠나온 크록스를 다시 찾게 만드는 인간의 생활 패턴이 있었으니, 운동화, 구두, 샌들 등의 신발을 신는 사이의 시간, 신발을 벗은 것도 신은 것도 아닌 시간이 인간의 일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실외에 있다가 실내에 빨리 들어가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긴 사람, 실내에 길게 머물다가 잠시 실외를 다니는 사람은 적절한 신발을 찾다가 크록스에 도착한다.운동화가 아니지만 어느정도 운동화 같고, 슬리퍼는 아니지만 슬리퍼가 될 수 있으며, 샌들인듯 샌들이 아닌 형태로 적절히 막히고 적절히 뚫린 형태는 귀여운 악어의 눈물로 작동한다. 일반적인 신발보다 큰 사이즈는 발의 민감도를 떨어트려 어딘가 걸려넘어지지 않도록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반적으로 두께가 있는 밑창은 온도 변화에 둔감한 합성수지 소재로 만들어져 발의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고 소재 자체의 탄성이 있어 발바닥에 고무 근육이 더해진 효과가 난다. 이 근육이 더해져 어윈브룸(Erwin Wurm)의 FAT CAR 처럼 부푼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농부의 흙을 씻던 고무신은 의료진의 근무시간 실내화로, 구급대원의 실외화로, 하이패션의 패션위크나 의류 쇼핑몰 상품과 매치되는 펀하고 쿨한 착장 코드로, 학생들의 실내화로 변모했고, 베이커의 주방에서,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에서 온갖 재료와 액체의 세례로부터 양말과 발을 지키는 보호장비로 기능한다. 폴리우레탄계 합성수지가 도시의 주차방지, 과속방지턱, 라바콘, 안전 체인, 안전모, 가설건축물의 외벽이나 지붕이 되는 것과 비슷한데, 아침에 일어나 샤워할 때 부터 바깥에 나가 일할 때까지 신을 수도 있는 신발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게다가 형광부터 알록달록한 색감, 숫자와 알파벳부터 디즈니와 마블 캐릭터에 이르는 다양한 지비츠(Jibbitz)로 장식할 수 있으니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에서 정신의 발랄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자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현대인에게 죄책감 없이 소비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다만 악어의 발가락은 엄지가 가장 긴지 크록스는 엄지 쪽이 가장 돌출된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발가락이 아파질 수 있으니, 제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잘 고르도록 해야한다.


TALK TALK

Zip 속의 PDF

곽이브: 안녕하세요, 콘노 유키님
다름 아니라, ‘zip 속의 pdf’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조선통신사 월간소식은 텍스트를 pdf로 첨부해 발송하는 방법으로 구독 되고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저는 zip 으로 담아 문서와 구독 캡처 이미지를 보내주시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어요. 최근에 이메일에서 바로 뉴스레터를 보게되는 대다수의 구독 서비스들이나 자체 플랫폼을 만드는 경향 속에서 오히려 아날로그 같달까... 모든 텍스트들도 데이터로 파일의 용량을 가지는 것처럼 구조와 텍스트에 바디를 부여하는 행위나 의식 같았어요.
흔히 텍스트는 문서 파일이나 pdf로 저장되어 공유되곤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비평가로서 익숙하고 의례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이미지화하는 방식으로 글을 담고 있나 싶었고요. 그렇다면 글 쓰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거라 여겨질 수도 있는 주어진 인터페이스가 역으로 미적인 것이 되어 시각성을 가질 수도 있을까. 그런 것을 의식 하셨나 궁금해졌습니다.

콘노 유키: 안녕하세요 곽이브 작가님. 질문 잘 받았습니다. 조선통신사 월간소식을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지점은 글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중에서 저는 글이 눈앞에 나타나는 시간을 고민했어요. 앱을 켜자마자 보이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우연성과도 달리, 어떤 내용이 왔는지 단번에 알아보기 어렵고, 제때 안 볼 수 있는 전달방식을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편물처럼 여겨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왔습니다. 우편물이 도착하는 시간 혹은 시차는 몇번이나 겪어온 경험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돈이 없어서 부모님께 해외송금을 부탁하거나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 해외우편(EMS, 선박, 일반우편물)으로 부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걸 기다리고 또 열어보는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ZIP 형식을 썼습니다. 바로 안 봐도 되고 바로 안 열어봐도 되는 형식을 고민했어요. 카톡이나 인스타그램보다 좀 더 시간이 느리게 작동되는 매체를 고민해봤을 때, 이메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인스타그램 계정을 판지 한 2년이 지나가고 트위터를 시작한 이후, 불특정다수를 위한 포스팅은 많았는데 미술 관련 홍보를 이메일로 드린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미술계에서 아는 사람이 생기고.. 그러던 차에 시청각에서 기획전을 열게 되었어요. 그때는 SNS로 홍보도 올렸지만, 사실 진심을 담으려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분께 그때 처음으로 이메일을 쓰게 되었어요. 미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거의 첫 단계였기도 해서, 그동안 만나뵌 분께 정성스레 이메일을 드리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많이 샛길로 빠진 것 같은데.. 그때 정희민 작가님이 이메일로 연락 줘서 반갑다고 하신 걸로 기억해요. 저도 그렇지만 업무에 쫓기고 이메일함에 편지 같은 편지가 거의 오는 일이 없는 와중에 반가운 소식으로 전달돼서.. 그 이야길 듣고 이메일 쓰는 일에 좀 더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업무량이 훨씬 넘고 처리해야 될 일도 많은데, 그럼에도 나중에 언젠가는 읽고 시간 되면 회신 보내려고 하는 과거처럼 이메일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이런 측면이 조선통신사 월간소식 프로젝트와도 공명한다고 봐요. 비록 모든 것들이 잊혀지고 또 하나만 기억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그걸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제 머릿속에서 기억하는 경험이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보낸 이메일 역시, 읽고 끝나거나 너무 많은 포스팅을 즐겨찾기에 담는 것과 달리, 분명 거기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물질적인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시의 콘노 유키라는 필자의 존재감이 배어 있는 형식으로 zip이나 pdf 형식을 계속 쓰는 것 같아요.


제목목록

집에 있는 과일(생각나는 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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